나의 냉면 이야기1

동네로 들어서는 길을 가다보면 가끔 중늙은이 아저씨가 가게밖에 솥을 걸고 면을 삶고 있다. 을밀대라는 간판과 함께‘손으로 직접 뽑는 냉면’이라고 쓰여 있다.

열 살의 나는, 왜 안에서 하지 않고 밖에서 하고 있지, 라고 생각한다. 아마 가게가 좁아서 그런 것 같다. 앞치마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저씨가 입고 있는 옷이 꾀죄죄해 보이고 가게는 좁고 허름하다.

이제 집을 떠난 뒤 20년이 넘게 흘렀다. 나는 이북 사람 자식답게 냉면을 좋아해서 잘 하는 집은 부지런히 가본다.

그런데 평양냉면을 옛날 그대로 하는 집은 아주 드물다. 나의 고향 염리동에 있는 을밀대와 충무로 대한극장 뒷골목에 있는 필동면옥 정도라고 할까. 강남 우래옥에도 몇 번 가봤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

냉면은 차게 해먹는 국수라는 뜻이다. 국물을 따듯하게 해먹으면 온면이라고 한다. 그래서 필동면옥에 가면 아직도 차림판에 온면이 있다. 옛날 사람들이 냉면도 먹고 온면도 먹었다는 얘기이다. 메밀로 만든 국수에다 차게 만든 고기국물(육수)을 부어 먹었던 것이 냉면이다.

이런 개념을 알면 창조가 가능하다. 집에 메밀 면이 없고 고기 국물도 만들기 힘들 때 냉면을 해먹을 수는 없을까?

나는 먼저 고기 국물 대신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어 식혔다가 차가와질 때까지 냉장고(냉동실)에 넣어 둔다. 한참 뒤 밀가루 국수를 삶는다. 이것을 냉동실에 조금 넣어두면 시원해진다. 그런 뒤 국수에다 시원한 멸치 국물을 넉넉히 부어 먹으면 아주 시원하고 사먹는 냉면에 못지않게 맛도 있다. 이것도 냉면이다. 내가 새로 만든 냉면. (잔치국수를 국물을 차게 해서 먹는 것과 같다.)

평양냉면은 메밀로 만들고 함흥냉면은 감자로 한다. 그쪽에서 많이 나는 것을 쓴 것이다.

평양냉면이라고 꼭 평양에서만 먹는 것은 아니다. 평안도, 황해도처럼 서북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평양과 함흥은 옛날에 꽤 잘 사는 동네이다. 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해먹은 음식이 냉면이 아닐까. 손수 국수를 뽑고 육수를 우려내 만들었으니 손이 많이 가고 재료값도 꽤 들어가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밀면이라는 게 있다. 밀면은 이북사람들이 6.25때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부산에서 퍼뜨린 음식이다. 부산에는 메밀이 없기 때문에 밀가루를 쓴 것이다. 그런 밀면이 이제 부산의 명물이 되었고, 거꾸로 서울에까지 올라왔다.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은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먹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문명이 대륙에서 들어왔다. 음식도 마찬가지여서 남쪽 사람들은 가공 음식인 ‘국수’을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경상도 사람인 우리 어머니나 장모님을 필동면옥과 을밀대에 모시고 갔다가 욕만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한번은 전라도 사람과 함께, 잘 하는 냉면집이 있다고 멀리서 을밀대까지 찾아왔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자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때의 무안함이란.

이렇게 냉면을 먹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유명한 냉면집에 가서 비빔냉면을 먹는다. 그러면 나는 냉면이란 게 원래 물냉면이 진짜 냉면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마지못해 물냉면을 시켜먹는데, 국물은 그대로 남긴다. 아이구, 아까워라.저 귀한 고기 국물을.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만 별 도리가 없다.(계속)

by 꿈돌이 | 2009/07/25 16:15 | 잘먹자 | 트랙백 | 덧글(2)

관상,미신인가 사실인가(허영만의 꼴을 보면서)

 

어느 날 나는 사무실에 벽에 걸린 거울을 보았다. 눈곱이라도 껴 있는지 잠깐 쳐다본 것이다. 그런데 내 얼굴 양쪽 광대뼈 쪽에 이상하게도 붉은 빛이 돌았다.

밖에 돌아다녀서 탔나,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탄 것이라면 다른 곳도 좀 탔을 텐데, 하며 머리를 갸우뚱했다.

관상학에서 붉은 빛은 살기이다. 얼굴에 붉은 빛이 돌면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침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면 붉은 빛은 없어진다고 한다.

그 얼마 뒤에 나는 회사에서 잘렸다. 윗사람과 뜻이 맞지 않아 내 뜻과는 다르게 회사를 나오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의 얼굴에 붉은 빛이 돌고 있을 때, 윗사람은 나를 내보내려고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관상학에서 말하는 붉은 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어느 날 ‘허영만의 꼴’이란 만화를 보는 데 그 ‘붉은 빛’에 대해 나왔다. 그때 무릎을 쳤다. 내 얼굴을 다시 보았다. 붉은 빛은 이미 없어졌다.

허영만의 꼴이란 만화는 그 일보다 꽤 앞서 보게 되었다. 어느 날 사무실 앞 김밥 집에서 밥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동아일보를 뒤적이다가 처음 보게 되었다. 그 뒤로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의 블로그까지 다 뒤져가면서 앞에 나왔던 것(꽤 많았다)을 며칠 만에 모두 보았다.

이처럼 내가 이 만화에 빠져든 것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고, 사람에 대해 판단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 관상학이 필요하다.

또 스스로에게 다짐하기(자기 암시) 위해서이다

그래서 좀 창피한 얘기지만, 만화를 보면서 책상 앞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옆에 누가 있어 창피하면 화장실에 가서 본다. 작은 손거울로 옆모습을 보기도 한다.(깊이 빠졌을 때 한 동안 그랬다는 얘기지 요즘도 날마다 그러고 있지는 않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그래서 나는 할 수 있어.’

이렇게 속으로 되뇌는 것이다.

나는 관상학, 인상학에 대하여 몇 번 강의를 들었다. 최만리라는 분한테 강의를 듣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선희라는 분의 강의를 테입으로 들었다.

그런데 허영만의 꼴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수박겉핥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관상에서 ‘코’가 자기자신을 뜻하고, 코가 작은 사람은 그만큼 자기가 강하거나 주도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허영만의 꼴에서는 코는 물론, 코 뿌리까지 얘기하고 있다. 코 뿌리란 눈과 눈 사이에 코가 시작되는 곳으로, 작가는 코 뿌리가 좋아야 한다고 수없이 얘기했다. (허영만 씨는 코 뿌리가 좋은 사람으로 빌 게이츠의 부인인 멜린다 게이츠,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예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동안 코가 잘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코 뿌리가 좋아야 한다고 하니, 아무리 내 논에 물대기처럼 잘 보려고 해도, 내 코 뿌리는 좀 꺼져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손거울을 이리저리 자꾸 비쳐 봐도 아닌 것을 어쩌랴.

‘코가 잘 생겼는데 코 뿌리가 약한 사람은 마흔 네 살에 삶에 빛이 든다.’

이 말을 들으려고 나는 지금껏 허영만의 꼴을 보았던 것이다.(관상학에서는 우리 얼굴 곳곳마다 뜻하는 나이가 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나는 허영만의 꼴을 보면서 내내 참 신기하다, 어째서 그럴까, 과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그리고 그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첫째, 관상이란 하나의 통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런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종을 갖고 말해도 된다. 러시아와 같이 추운 데서 사는 사람(백인)은 살갗이 하얗고 코가 오뚝하다.(찬 바람을 많이 들이 마시면 안 되니까) 이런 사람들은 몹시 추운 데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다 보니 침착하고 강한 성품을 갖게 되었다. 아프리카처럼 더운 데서 사는 사람(흑인)은 살갗이 검고 코는 납작하다. 날이 더우니까 한꺼번에 숨을 더 많이 쉬기 위해서이다. 더운 데서 살다보니 성격도 느긋하다.

이처럼 사람이 놓인 자연환경에 따라 그 생김새가 달랐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다보면, ‘코가 높은 사람은 어떻다’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렇다.’ 라는 것(경험과 통계)이 생겨날 수 있다.

‘인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주선희 씨는 사람의 인상(관상)은 바뀐다고 말했다.(세상에 바뀌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일을 하면 인상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일이다. 나쁜 생각을 하고 나쁜 짓을 하면 얼굴에 그것이 나타난다. 쉬운 말로 인상이 ‘드러워진다.’ 이런 사람을 ‘관상이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마흔이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람은 격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있다고 작가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 그리고 꼴값을 한다.

덧붙임 : 광대뼈 같은 곳에 붉은 빛이 돌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것처럼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이 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에너지로 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에너지로 되어 있고 서로 다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먼저 나타나는 것(징후)처럼 말이다.

by 꿈돌이 | 2009/07/21 18:05 | 삶과 예술 | 트랙백 | 덧글(0)

작가는 태어난다

요즘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고 있다. 이 책은 글쓴이가 살아온 이야기를 다뤘는데, 같은 또래인 나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 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한 쪽이 있다.

열여섯 살 주인공은 외사촌과 함께 직업훈련원에 들어가 기숙사에서 산다.

그곳에서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는 비밀, 시나 소설 같은 글을 쓰겠다고 외사촌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니까 작가가 되겠다는 거니? 그런 사람들은 다르게 태어나는 것 같던데?”

“다르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거야.”

 

열여섯 살 소녀가 정말 이렇게 말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맞다. 작가는 다르게 태어난다.

by 꿈돌이 | 2009/07/19 12:45 | 즐거운책읽기 | 트랙백 | 덧글(0)

<MBC스페셜, 아줌마 그에게 꽂히다>를 보고

MBC스페셜 <아줌마, 그에게 꽂히다>는 ‘아줌마 팬’들을 따듯한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방송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편네들의 반란’이라고 할까? 오랫동안 여편네,아줌마라고 하찮게 여겨지던 여성들이 드러내놓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일본에서 ‘배용준 붐’이 일어났을 때 예견된 것이다.

방송하는 내내 아줌마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엄마(아내)도 사람이다. 엄마도 좋아하는 게 있고 욕망이 있고, 엄마만의 시간을 갖고 엄마의 삶을 살고 싶어.”

남자들이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찾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수백년 동안 유교(성리학)에 눌려 있던 여성들이 이제 ‘나도 욕망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남성이 젊고 예쁜 여성을 보면 안아보고 싶다. 여성도 똑같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것을 나쁘게 생각했고, 여성들은 그런 마음을 입 밖에 내기가 쉽지 않았다.(물론 여자들끼리 수다 떨 때는 그런 말을 잘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던 것이 세상이 달라지고 여성이 하는 구실이 달라지면서 자기 마음을 밖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세상은 남성이 지배하고 그 남성은 여성이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여성의 자리요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회가 바뀌면서, ‘이 세상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지배하고, 남성은 (전과 똑같이) 여성이 지배한다.’로 달라졌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온통 여성이 힘이 세지고 있다. 이것은 무슨 이론이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버스를 모는 여성 기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미국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에 나온 것과 같은 일들이다.(미국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꼭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이다.)

남자들은 젊은 여자를 찾으면서 여자들은 그런 마음을 갖는 것조차 나쁘다고 하는 것은 옹졸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을 나쁘다고 한다면, 그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이나 여성이나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과 욕망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남존여비’라는 뿌리 깊은 의식은 나쁜 것이지만, 지금껏 우리 여성들이 마냥 하찮게 여겨진 것은 아니었다. 여성이 누구인가. 남성의 어머니요, 사랑하는 아내이며, 귀여운 딸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무시하는가. 천군만마를 다스리는 장군도 집에 있는 마누라를 무서워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만큼 여성이 보이지 않게 힘을 가져 왔던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서양 사람들과 달리 여성이 시집가도 자기 성(姓)을 그대로 가졌다. 그리고 성리학이 아무리 눌러도 활달한 우리 여성의 마음까지 짓밟지는 못했다. 지금 우리나라 여성들이 사회에서 활발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일은 반드시 앞에 서야 좋은 것은 아니다. 앞에 서는 사람은 그만큼 바람을 많이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기로운 여성은 남성을 앞에 세우고 자신은 뒤에서 조종한다. 그래서 남성과 싸우고 남성을 무찌르려고 하는 여성은 남성 에너지가 너무 많거나 머리가 나쁜 것이다.

음덕(陰德)이라는 말은 있어도 양덕(陽德)이란 말은 없다.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할 때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지 그것을 드러내고 자랑하면 아무런 공(功)이 없다고 한다. 음덕이란 여성이 베풀 수 있는 덕이라는 뜻이다.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자랑하지 않고 베푸는 덕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것을 키우는 사랑이요, 모든 사람들이 머리 숙이는 훌륭한 것이다.

또 요즘 여성들처럼 반드시 옷을 벗다시피 하고 다녀야 남성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다. 홀딱 벗고 다 보여주는 포르노를 보면 신비감이 없고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무슬림 여성들처럼 깊이 자기 모습을 감추는 것이 오히려 남자들 마음을 더 끌 수 있다.

이것이 여성이 가진 훌륭한 무기요, 기업에서 마케팅을 잘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진짜 좋은 제품은 TV광고가 아니라 보이지 않게 입소문으로 퍼져 나간다. 공자는 세상에 나와 성인이 되었지만 노자는 세상을 등짐으로써 수천 년 동안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모든 것이 바뀌는 요즘 슬기로운 우리 나라 여성들이 자리 매김을 잘 하리라고 믿는다.

by 꿈돌이 | 2009/07/18 15:29 | 삶과 예술 | 트랙백 | 덧글(2)

쇠귀고개(우이령)를 다녀와서

나는 오늘 소귀고개(우이령)에 다녀왔다.

소귀고개는 옛날(1968년) 김신조 씨가 북한 공비로서 청와대를 무찌르기 위해 내려왔던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30년 동안 길을 막고 있다가 처음 사람들에게 내놓은 것이다.

소귀고개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고양시 장흥면(송추쪽)을 잇는 6.8킬로미터에 이르는 숲속 지름길이다. 따라서 구파발(송추)에서 가는 길과 우이동에서 넘어가는 길이 있는데, 나는 오늘 구파발쪽으로 오른 것이다. (3호선 구파발역에서 704번 버스를 타고 석굴암 들어가는 곳에서 내리면 된다)

길이 꽤 넓고 가파르지 않으며 나무가 우거지고 골짜기에 아름다운 물이 흐른다.

막아 놓아서 시원한 물에 한번 발을 못 담근 것이 아쉽다. 옛날처럼 마음대로 개울에 들어가 밥해먹고 놀았을 때가 그립기도 하고, 다음에는 꼭 발을 물에 담가보겠다고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소귀고개를 열어놓았다고 하여 가보고 싶었던 터에 때마침 시간이 되어 어머니와 누나, 매형과 함께 간 것이다. 내 차를 몰고 갔는데, 어머니가 다리가 불편해 걷지를 못한다고 하니, 지키고 있는 국립공원 직원들과 군인들이 고맙게도 순순히 문을 열어준다.

다음에는 꼭 쇠귀고개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왜 쇠귀고개라고 했는지 알아봐야겠다. 얼마나 좋은 우리말인가. 우이령이라 하지 않고 쇠귀고개라고 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by 꿈돌이 | 2009/07/18 00:23 | 갔다온 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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