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5일
나의 냉면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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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의 나는, 왜 안에서 하지 않고 밖에서 하고 있지, 라고 생각한다. 아마 가게가 좁아서 그런 것 같다. 앞치마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저씨가 입고 있는 옷이 꾀죄죄해 보이고 가게는 좁고 허름하다.
이제 집을 떠난 뒤 20년이 넘게 흘렀다. 나는 이북 사람 자식답게 냉면을 좋아해서 잘 하는 집은 부지런히 가본다.
그런데 평양냉면을 옛날 그대로 하는 집은 아주 드물다. 나의 고향 염리동에 있는 을밀대와 충무로 대한극장 뒷골목에 있는 필동면옥 정도라고 할까. 강남 우래옥에도 몇 번 가봤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
냉면은 차게 해먹는 국수라는 뜻이다. 국물을 따듯하게 해먹으면 온면이라고 한다. 그래서 필동면옥에 가면 아직도 차림판에 온면이 있다. 옛날 사람들이 냉면도 먹고 온면도 먹었다는 얘기이다. 메밀로 만든 국수에다 차게 만든 고기국물(육수)을 부어 먹었던 것이 냉면이다.
이런 개념을 알면 창조가 가능하다. 집에 메밀 면이 없고 고기 국물도 만들기 힘들 때 냉면을 해먹을 수는 없을까?
나는 먼저 고기 국물 대신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어 식혔다가 차가와질 때까지 냉장고(냉동실)에 넣어 둔다. 한참 뒤 밀가루 국수를 삶는다. 이것을 냉동실에 조금 넣어두면 시원해진다. 그런 뒤 국수에다 시원한 멸치 국물을 넉넉히 부어 먹으면 아주 시원하고 사먹는 냉면에 못지않게 맛도 있다. 이것도 냉면이다. 내가 새로 만든 냉면. (잔치국수를 국물을 차게 해서 먹는 것과 같다.)
평양냉면은 메밀로 만들고 함흥냉면은 감자로 한다. 그쪽에서 많이 나는 것을 쓴 것이다.
평양냉면이라고 꼭 평양에서만 먹는 것은 아니다. 평안도, 황해도처럼 서북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평양과 함흥은 옛날에 꽤 잘 사는 동네이다. 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해먹은 음식이 냉면이 아닐까. 손수 국수를 뽑고 육수를 우려내 만들었으니 손이 많이 가고 재료값도 꽤 들어가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밀면이라는 게 있다. 밀면은 이북사람들이 6.25때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부산에서 퍼뜨린 음식이다. 부산에는 메밀이 없기 때문에 밀가루를 쓴 것이다. 그런 밀면이 이제 부산의 명물이 되었고, 거꾸로 서울에까지 올라왔다.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은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먹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문명이 대륙에서 들어왔다. 음식도 마찬가지여서 남쪽 사람들은 가공 음식인 ‘국수’을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경상도 사람인 우리 어머니나 장모님을 필동면옥과 을밀대에 모시고 갔다가 욕만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한번은 전라도 사람과 함께, 잘 하는 냉면집이 있다고 멀리서 을밀대까지 찾아왔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자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때의 무안함이란.
이렇게 냉면을 먹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유명한 냉면집에 가서 비빔냉면을 먹는다. 그러면 나는 냉면이란 게 원래 물냉면이 진짜 냉면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마지못해 물냉면을 시켜먹는데, 국물은 그대로 남긴다. 아이구, 아까워라.저 귀한 고기 국물을.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만 별 도리가 없다.(계속)
# by | 2009/07/25 16:15 | 잘먹자 | 트랙백 | 덧글(2)



